" 친구의 무덤 가에는 " 詩作 note

필자의 제 1시집(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고등학교 시절에 지은 시인데, 당시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그리며, 슬픔을 달래고 있는 감정이 올올이 드러난다. 수십 년이 흐른 이제까지도 시를 통하면 비교적 생생하게 감정여행이 가능하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어느 정도 기간만 지나면,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일조차도 가물가물해지곤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을 접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담아야 하는 머리의 한계에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은 슬그머니 물러나게 마련이다. 필자도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시로 남겨진 기억은 이상스럽게도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다시 읽는 순간에 생경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선다. 아마도 그건 필자만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일반적으로 일기나 메모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기억은 연장시킬 수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되리라고 본다.

친구의 무덤 가에서 그리움을 삭이던 까까머리 사춘기 소년의 심상을 되새기던 지난 주에는 필자 주변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일과에서 부대끼는 일상은 늘 똑같은 분량이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 삶의 지경이겠지만 이상스럽게도 심력을 많이 소요시키는 일이라든지, 육체적으로 버거운 일이 있게 되면 유난스레 많은 삶을 살아낸 것 같은 착각을 하게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 필자의 삶은, 특별히 사람의 삶에 대해 신중하게 되돌아보며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 일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주말에는 '충북 노은'에 자리한 선산에서 72년째 영면하시던 할아버님의 산소와, '강원도 문막'에 44년 전에 모셨던 할머님 산소를 정리하여 수습한 유골을 화장한 후에 두 분의 분골을 합해서, 생전에 사시던 '문막 토평부락'이 내려다보이는 '건등산' 중턱에서 하늘로 뿌려드리고 돌아왔다.

조상님께 대한 불효이자 천륜에 어긋나는 배은망덕이라고 여겨져 도저히 실행하기 민망하고 힘겨웠지만, 올해 87세 되신 아버지와, 역시 80이 넘으신 작은아버지 두 형제분께서 고심 끝에 내리신 결론이라시기에 눈물을 머금고 따랐다. 당신 살아계실 때 정리하지 못하면 자손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는 거라면서, 불편하신 노구를 이끌고 산자락을 오르시는 아버지를 부축하면서 몰래 눈시울을 적셨다.

자식들까지는 모르지만 그 아래 손자대 이후에는 산소를 관리하거나 찾아뵙기도 쉽지 않을 거라면서, 이는 산소자리나 납골묘나 수목장이나 매 한 가지라, 이 나라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이 가장 합당한 처사라 여겨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니, 더는 아무 말도 말라시는 아버지의 그 속이 어련하셨을까?

아무튼 새벽 6시부터 할아버지 산소를 먼저 정리하고, 자리를 옮겨 점심식사 이후에 할머니 산소까지 정리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피치 못할 연유로 행한 일이지만 이 날을 꼭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못난 후손이 부끄러움에 물들어 고개 숙인 날로 말이다.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면서 당신의 부모님을 보내드렸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며, 부족하나마 두 분 남은 여생의 효도에 진심을 더 좀 담고자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하나의 실감나지 않는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실상 아직은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준비 없는 이별이라서 더욱 안타깝고 가슴 저미는 심정이었다. 밤 내내 한 잠도 못 이루면서 괴로워하던 애완견 '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전 날 저녁도 평소대로 곧잘 먹고 별다른 조짐이 안보였는데, 갑자기 밤 늦게부터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숨이 가쁜지, 마치 가시가 걸린 것 처럼 수시로 컥컥대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밤새 힘겨워 했는데, 아침에 병원에 데려갈 준비를 마치고 문 열 시간만 기다리다가,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못 참겠기에 문 앞에 미리 가서 기다리려고 "별이야!" 하고 이름을 불렀더니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졸지에 곁을 떠나갔다. 사실 반려견이니, 애완견이니 하는 단어조차 생소해서 별로 관심도 갖지 않던 필자가,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는 첫 정을 준, 마치 딸같은 아이였다.

별이는 이제 11살 밖에 안된 ‘미니말티즈’ 종이었다. 아직은 몇 년 더 곁에서 기쁘게 해주고, 온갖 재롱을 떨어줄 거라 여겼기에 완전 무방비상태였다. 평소 너무나도 작고 귀여운 체구였지만 잔병치레도 없었고, 말귀도 잘 알아들어 귀찮게도 하지 않았고, 그 작은 체구에도 거리에 나서면 서너 배는 됨직한 크기의 개들에게 앙칼지게 대들어 싸움질을 하고, 그동안 네 번이나 아기를 낳을 정도로 강단이었다.

그토록 똑똑하고 명랑하던 아이라서 헤어질 때에도 부담을 덜 주려고 그랬던 걸까? 이렇게 갑자기 갈 수도 있다는 건 전혀 추측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은 필자의 애완견은 아니고 아주 어릴 때부터 길러주고 함께 생활한 주인은 정작 따로 있지만, 지난 시절의 어느 날, 필자가 세상의 칼에 찔려 너무 힘겨워 하며 벅차게 살아가고 있을 제, 우연히 필자의 곁으로 와서 아빠처럼 따르며 가까워진 건 5년 반 정도의 세월이니까, 그러고 보니 별이의 생애에서는 꼭 절반 정도였던 셈이다.

이제 별이는 갔다. 그리움과 소중함의 의미를 깊이 새겨주면서 멀리로 떠났다. 상실감이 이리도 크게 마음을 가득 채울 거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했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별이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잊을 수 없는 별이와의 수많은 추억들이 여기 가슴 깊은 데 오롯이 자리매김되었으니, 앞으로도 늘 더불어 살아갈 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완견이라는 제목으로 필자의 정을 차지하던 녀석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녀석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아마 당분간은 꽤나 그리워할 듯 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가면 기억이 흐릿해질 테지. 그리고 그렇게 잊을 수 있겠지. 그런 게 시간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2015년 1월의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던 ‘시간의 향기’라는 책이 있다. ‘머무름의 기술’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로, 현대사회의 모든 시간이 노동의 인질이 되었음을 포착한다. 모든 시간은 일의 시간이고, 여가시간도 일의 시간을 준비하는 보조적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늘 시간이 없고 쫓기는지, 왜 시간은 그토록 허망하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주어진 많은 시간은 또 왜 낭비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일상적 질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아냈다.이 책에서는 ‘노동’으로만 인식되는 피로사회를 넘어서 ‘사색의 시간’을 탐색한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루스트, 하이데거’ 등의 사상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하여 근현대 주요 사상가들의 요점을 짚어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다. 저자는 활동적 삶 중심의 가치관을 사색적 삶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멈춤의 시간, 활동하지 않고 자기 안에 머물며 영속적 진리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때에 비로소 인간은 진정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시간은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됨으로써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늘날 시간의 흐름은 자연적 순환과 같은 리듬도, 미래의 구원이나 종말, 또는 진보라는 의미 있는 방향성에서 오는 서사적 긴장감도 상실해버렸고, 그저 끝없는 현재들의 사라짐으로써 체험될 뿐이다. 그리하여 지속성의 경험은 매우 희귀한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삶도 이렇게 분산된 시간 속에서 산만하게 흘러간다. 즉흥적인 시작과 중단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삶은 완결되지 못하고 불시에 끝나버린다.

저자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근대 이래 계속 강화되어온 ‘활동적 삶의 절대화’ 경향에서 찾는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일하는 자, 활동하는 자라는 사실에서밖에는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계를 자신의 의지에 복속시키고 변화시키는 노동만이 인간에게 궁극적 자유를 가져온다는 사상에서 그 극명한 표현을 얻는다. 활동적 삶의 절대화는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어떤 리듬도 어떤 질적인 특징도 없는 양적인 단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시간의 위기를 초래한 조작 가능성의 세계관과 ‘활동적 삶’ 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사색적 삶’이다. 사색적 삶이란 행위를 통해 세계와 시간을 조작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적 삶의 대척점에 있는 삶이다. 그것은 정관하는 삶, 무위의 삶으로서, 행위를 멈추고, 우리의 뜻대로 대상을 조작하고 바꾸어 버리려는 협소한 욕망을 잊어버리고, 그 순간에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가만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어쩌면 기다림에 대한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열매를 숙성시키기 위해 천천히 나아가는 자연의 시간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축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독서를 멈추게 하는 힘이 내용 속에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에세이 같은 제목과, 저자의 전작인 ‘피로사회’ 만큼 만만한 분량이라고 얕보았다간 큰 코 다치는 책이다. 중심을 잃은 채 무차별한 시간에 휩쓸리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는 저자의 글은 읽는 이에게 사색을 요구한다. ‘한나 아렌트’의 행동을 통한 새로움의 비판도 사색적인 견지에서 신선했으며,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날카로운 통찰이 피곤한 삶에 촉촉한 사색의 단비를 흩뿌려준다. 자꾸 본문의 글에 매료되면서 전작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일독해서 후회 없을 것으로 여겨 추천한다.

하늘의 제왕 독수리 새끼를 우연히 발견한 남자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미 새와 둥지를 찾을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와 병아리들과 생활하도록 했다. 병아리들과 자란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처럼 행동했다. 시간이 흘러 몸집이 커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남자는 독수리 새끼에게 야생성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밖에 데리고 나가 높이 날려 보았다. 날갯짓만 할 뿐 독수리는 전혀 날지를 못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날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야생성이 모두 소멸했다고 생각한 남자가 산에서 내려가려던 순간, 강렬한 눈빛과 매서운 속도로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보였다. 그 순간, 야생성을 잃은 줄만 알았던 독수리가 힘찬 날갯짓을 하더니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 동기부여는 큰 성공 요인이 된다. 선의의 경쟁상대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쟁상대가 다른 누구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 충분히 선의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성공적인 삶의 비밀은 무엇을 하는 게 자신의 운명인지 찾아낸 다음 그걸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진리는 무한하다. 그러나 시간이 주고자 하는 진실은 하나다. 시간의 주인인 우리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생각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은 우리를 살게도 하고, 그냥 맥없이 쓰러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무의미한 생각이나 환경에서 스스로 벗어나 하늘로 눈을 돌리면, 절대적인 의미의 시간의 힘이 비로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스승이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붓으로 하얀 종이의 한 가운데 선을 그었다. 이윽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 종이에 그어 놓은 선을 짧게 만들어 보아라. 단, 절대로 선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스승의 말에 제자들은 어리둥절해야 했다. 그리고 선을 조금 지우는 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한 제자가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제자는 붓을 들고 스승이 그은 선 옆으로 더 굵고, 더 긴 선을 그렸다.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문제로 인해 고민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자체의 문제에 너무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해결이 힘든 경우가 있다. 때론 상황 밖으로 나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요는 시간의 힘을 제대로 믿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어떤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되는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말한다.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깊이 바라보라고.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관점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것이 진실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 쪽의 현상을 단정적으로 진리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음이다. ‘EBS 다큐프라임’ 특별기획 ‘감정 시대’ 중에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라는 제목의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보자. 먼저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 나이 예순, 내 직업은 대리운전기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내 일은 시작됩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호출을 기다리면서 밤거리를 서성입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은 뛰거나 걸어야 하는 이 일이 이제는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그런 나에게도 빛나는 시절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곧 아들 둘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성실하게 할 일만 하면 안정된 삶은 계속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평생직장이 당연하던 그 시절 미래를 의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97년, IMF와 함께 내 기대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삶은 쉽게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대리운전 손님으로 아들 또래를 만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납니다. 변변히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대학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지만 노후준비도 시작조차 하지 못한 내가 아들에게 혹여나 짐이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

다음은 ‘아들 이야기’이다.

- 저는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에 다닙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원을 다니는 것도 집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혼자 독하게 공부했어요. TV에서나 보던 거대한 학교 정문을 들어서던 날, 제 꿈이 이뤄졌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고액과외가 줄을 설테니 집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사라지고 녹록지 않은 현실이 보였습니다. 근로 장학생부터 학교 앞 분식집 서빙,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일해야만 했어요.

그런데도 학비에 생활비까지 3천만 원 빚이 생겼고 인생을 마이너스로 시작하게 되었죠. 언제부터였을까요? 이보다 더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데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불안했어요.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집안 환경이 달라졌고, 그 때 기억이 제 몸과 마음에 또렷이 새겨진 것 같습니다. 가정을 이룬다면, 책임감이 더해질텐데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두렵고 불안하기만 해요. 얼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 불안하지 않게 될까요? 그냥 다 포기하고 살아가는 편이 나을까요? -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개인적인 것이니 숨기는 편이 미덕이라고도 배워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감정을 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진단해야 할 때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소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큰 불행으로 발전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막연한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암덩이처럼 자라나서 우리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의의 두 관점에서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 짊어지고 있을수록 더욱 무겁고 버거운 삶의 멍에라는 결론이다. 이럴 때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하며 힘을 합친다면, 격려와 후원의 의미까지 얹어져, 시간이 주는 축복으로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함께 가는 여정이라면, 짐은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배로 키워갈 수도 있다. 그것이 화합이며 상생이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때로는 친구들의 놀림으로 인해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가 친구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부탁했다. 수업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끈을 하나씩 나누어주고는 오른손을 뒤로 돌려 허리띠에 끈으로 묶으라고 했다. 호기심에 재미있어 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말했다.

“이번 수업이 끝날 때까지 오른손을 쓰지 않고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 체험해 볼 거예요.”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묶었던 끈을 풀라고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자 반 아이들은 오른손이 없는 친구를 찾아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우리는 네가 그렇게 불편할 거라곤 생각 못 했어. 너는 오른손을 안 쓰고도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놀려서 정말 미안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나와 조금 다르다고 편견으로 바라보기 전에 아주 잠시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세상 온도는 조금씩 올라간다.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일지라도 절대로 늦지 않다. 세상의 모든 진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들이 처해있는 시간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다. 흐르는 시간도 평등하다. 그러나 시간의 가치는 각자 다르다.

여름이 간다는 것, 그리고 가을이 온다는 것, 시간이 흘러간다는 거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 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흘러 간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그 일들이 곧 우리의 삶이다. 그 일들은 모두 시간의 결과물이다. 삶은 결국 시간이다. 이 시간을 우리는 이제까지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 지금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그 소중한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