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동인지 형식이 아니고 단독 출판한 詩集으로는
林森의 첫번째 공식詩集으로서
92년3월20일 '도서출판 명보'에서 인쇄하였습니다.

처음 詩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의 作品을 총 망라하여
그 중에서 61편만을 선정한 詩集이며
序詩의 제목은 '정',
내용은 총 5개의 章으로 분류하여 엮었는데 순서대로
'序曲의 章' '發端의 章' '矛盾의 章' '追求의 章' '反省의 章'입니다.

고인이 되신 작사가 '박건호님'의 권두시가 처음에 있고
'박일송님, 이외수님, 정화석님, 최성현님, 박재우님'의 추천사가
'사색의 창을 열면서'라는 프롤로그에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林森,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가호성님'이 적어주셨습니다.

林森의 초기 詩風을 짐작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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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연가, 밤이면 *



시작노트

" 가을 연가, 밤이면 " 詩作 note

어느 계절 막론하고 만만하게, 수월하게 한 철 오롯이 지낸 적이 있으랴만, 유독 이 가을이라는 절기는 다른 세 철과 비견할 때 아쉬움도 미련도 퍽 많은 게 사실이다. 분명 날짜 상으로 따져보면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어 짧게 지나치는 것이 사실이건만, 그 하루들마다 웬 사연들이 폭포처럼 줄을 대고 쏟아져 잊지 못할 추억을 반죽하면서 그리도 지악스레 달라붙는지, 솔직히 이젠 가을이 지겹기까지 하다.

세상에서 최고로 쓸쓸해 하기도, 비감의 극에 달한 포즈로 감성에 젖어있기도, 지난 이별의 아픔을 곱씹으면서 거리를 헤매 돌며 정처없이 거닐기도, 속내를 털어놓고 말하자면 가을을 계속 만끽하기가, 가을에 흠뻑 물들은 채 숨 쉬기가 버겁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는 보편적이고 평온한 일상에 충실해야 할텐데,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의 마무리에 신경 좀 써야 할텐데, 이렇게 가을에만 푹 빠져있다가는 종국에는 폐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안되겠다. 오늘부터는 정신 좀 차리자. 흐트러진 이성을 다잡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어차피 붙잡아도 떠날 가을인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찾아올 가을인 것을, 마치 삶에서 마지막으로 볼 가을인 줄로 여기는지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보기에 영 꼴 사납다. 모름지기 계절의 진객이 어찌 가을 뿐이랴? 매몰차다고 종주먹 들이대며 좀 서운해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가을이라는 이름에게 일시적으로 절교를 선언하면서, 시크하게 먼저 뒤돌아서는 결단을 내려봐야겠다.

심플하게 작별의 인사를 목청껏 외치면서 담담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견지하도록 애 좀 써봐야겠다. 초가을부터 시절에 홀려 겅중거린 넋, 미상불 이만하면 가을에게 할 도리 다한 것 아닌가? 이 쯤 했으면 가을 보기에 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자만큼 이 가을에 많이 아파했던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봐라. 필자보다 더 이 가을에 슬픈 사연 많이 장만한 사람 있으면 나서보라고 해봐라. 아마도 없을 거다. 이 세상에는 없을 거다. 영영.

하얀 눈이 소복히 축복처럼 내려줄 겨울이 오면, 따스한 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며 뜨거운 차 한 잔에 삶의 굴곡을 문질러 부드럽게 변화시킬 겨울이 오면, 그렇게 삶의 문턱을 넘어 성큼 또 하나의 이야기를 써가게 될 겨울이 오면, 비단 그 이야기는 남에게 보여지지 않더라도 정녕 아름답게 쓰리라.

행복으로, 사랑으로, 평화로 빚어내리라. 가슴 깊은 심처로부터 시작된 미소의 꽃을 정성껏 가꾸고 자라게 하여,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파하며 온 누리가 물들게 하리라. 그래서 온 세상 꽃향기로 가득 차도록 활짝 활짝 피어나게 하리라. 그리 다짐하면서 오늘도 아쉬운 가을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한다. 길지 않은 가을밤을 지샌다.

그렇다. 지금은 가을의 끝이다. 이름하여 만추(晩秋)다. 가을이 영글어,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무르익은 늦가을이다. 우리는 가을의 모습을 그려보라 하면 우선적으로 자연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래서 늦가을이라면 그런 자연의 모습과 색깔이 바뀌어진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돌아보니 이미 코스모스도, 국화의 잔재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단풍도, 억새도, 낙엽도, 눈으로 마음으로 발로 충분하게 경험하였고, 오곡백과의 갈무리까지도 바쁜 몸짓은 다 지나 얼추 막바지다. 그럼 된 것 아닌가? 그럭저럭 성공적인 가을을 살아낸 것 아닌가? 그런 심상으로 가을이 간 것을 확인하려 한다. 11월 중순이라는 명찰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가을 가는 길목일 뿐이다. 멀리 보이는 산야가 그걸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사실 가을의 느낌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곳은 도시의 거리다. 휑하니 뚫린 도로들 마다 서글프게 각인되는 가을의 냄새가 우리를 너무도 쓸쓸케 한다. 잊고 살았던 가을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게 되면, 우리네 가슴을 쿡쿡 찌르며 가을은 눈물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가을엔 이별이 많다. 그렇기에 가을엔 헤어지기 위한 만남이 많다. 가을은 이야기가 많다. 가을은 사연의 계절이다. 도시의 가을, 도시의 이야기.

몇 해 전 우리 곁을 찾아왔던 영화 ‘만추’를 되새겨본다. 이 영화는 한 여죄수와 떠돌이 위조지폐범 사이의 3일간의 덧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본래는 1966년 작품으로,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2011년에 리메이크 제작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인공 남녀의 표정이 가을이라는 계절에 오버랩되면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빚어낸 국제적인 수준의 드라마틱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남녀 주인공의 연기가 너무도 실감난지라 마치 현실의 연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길을 걷다보면 어디선가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여겨질 정도로 한동안 그 분위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온통 멍이 든 얼굴로 시애틀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휘청거리며 내려오는 ‘애나(탕웨이)’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 애나는 9년의 형기 중 7년을 보냈을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72시간이라는 짧은 특별귀휴를 허락받는다.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애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훈(현빈)’을 만나게 되고, 둘은 애나의 짧은 특별귀휴 기간 동안 인연을 이어나간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탕웨이의 얼굴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하나하나의 표정 변화를 세밀하게 살피고, 대사보다는 그것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그렇다면 대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이 영화가 매우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외로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에서, 너무 넘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중성에 대한 고려가 느껴진다. 둘의 관계에서 시계와 안개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훈과 애나가 처음 만났을 때, 훈은 애나에게 차비를 빌려준 대가로 자신의 시계를 건네준다.

훈이 애나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는 순간은 둘의 첫 접촉(터치)이 일어나는 순간이고, 7년 동안 정지되어 있던 애나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계기가 된다. 손목시계는 둘 사이에서 몇 차례 건네지다가 애나가 감옥으로 복귀하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에 홀연히 애나의 손목에 등장한다. 아니 손목시계가 있음으로 해서 그 장면이 가장 애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애틀은 어쩌면 제3의 주인공이다. 시애틀의 가을안개는 그 자체로 둘의 사랑에 깊은 심연과 애처로움을 안겨다 준다. 애나는 감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훈과 함께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로 들어갔다가 안개가 걷히자 혼자서 감옥으로 복귀한다. 안개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안개는 곧 애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애나는 자발적 의지로 감옥을 벗어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돌발적 상황의 발생으로 수동적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애나, 그러니까 탕웨이의 표정을 살피는 영화다. 그만큼 영화에서 탕웨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몫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탕웨이는 정말 ‘좋은 배우’다. 영화가 끝난 직후에 든 생각이다. 그저 ‘좋은 배우’라는 표현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언어의 한계를 실감할 정도로 ‘좋은 배우’다.

애나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떠오르는 건 애나의 다양한 표정이다. 가을을 닮은 그 무표정 속에 담긴 슬픔, 기쁨, 호기심과 같은 감정들의 전달은 단연 압권이다. 탕웨이의 무표정 속에 담긴 감정은 보는 관객에게 몇 가지의 상념을 동시에 전달한다.

거기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탕웨이의 얼굴이다. 얼굴이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나이의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얼굴의 자연스러움과, 그 주름과 그 미소의 아름다움이 주 포인트다. 만약 탕웨이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아주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이 영화는 일생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이다.

만추는 탕웨이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걸작이라고 인정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그리고 만일 그 영화에서 도심의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면 보너스로, 그건 정말 진솔한 삶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거다. 새삼스럽게 뒤늦은 감은 있지만 아직 못본 사람들에게, 이제라도 한 번 챙겨서 보기를 강추하고 싶다. 가을 다 가기 전에.

그렇기는 한데, 오늘의 화두가 가을이라 하여 그저 한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만으로 이 계절을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가을에는 무조건 서글퍼야 하고, 고독을 느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통상적으로 가을이라 하면 젖어들게 되는 감성과 낭만이 있다면 구태여 반감을 갖지 말고 순리적으로 적응하되, 보이지 않더라도 그 다음의 계절을 살아갈 근원적인 활력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하자.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말고 여유롭되 게으르지 않도록 힘 쓰며, 집착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아집을 부리지는 말되 우유부단하게 흘러가서는 안되고, 우쭐대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항상 겸손과 공경의 마음을 갖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또한 하루를 살더라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고 지탄과 미움의 대상이 되지는 말아야 하며, 언제나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겸허하고 양순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 것이다.

거세게 흐르는 급류에 떠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조급하다. 그러나 언덕에 서서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피상적이기에 여유롭다. 내게 미움이 다가왔을 때 미움 안에 마음을 담구지 말자. 내게 걱정이 다가왔을 때도 긴 한숨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말자. 따지고 보면 만물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며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모든 희노애락이 속절없이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이다.

늘 신중하게 생각하자. 그러면 미움과 걱정과 어두움이 걷히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덕에 서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움은 미움으로 갚을 수 없고 걱정은 걱정으로 지울 수 없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언덕에 서서 미움과 걱정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진리는 언제나 일정하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시절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마음에 담고 실천으로 행하도록 노력하면 보람과 성취를 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말 한 마디에도 진정과 성의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말은 파동과 파장으로 우주를 움직여 놀라운 파워를 보여준다. 선한 말에는 선의 에너지가 작용하고 악한 말에는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한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5만 마디의 말을 한다. 스스로가 평소에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 솔직한 마음으로 점검해보자.

사랑 가득한 의사는 힘든 환자도 쉽게 살린다. 좋은 파동 때문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말로 비전을 보여준다. 남의 험담을 하고 다니면 가짜 지도자다. 흥하는 가정은 사용하는 말부터 다르다. 흥하는 말이 흥하는 가정을 만든다. 그러므로 자녀에게도 좋은 말을 가르쳐야 한다. 말의 힘이 위대한 자녀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우리의 삶에는 연습이 없다. 단 한 번의 실전이 바로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다. 소중한 그 삶에 기회는 그리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성공을 이룩하는 반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로 지나쳐버리고는, 훗날 땅을 치며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리스’의 한 마을에 동상이 서 있다.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동상을 대하면 해괴한 모습을 보고 모두 처음에는 웃게 된다. 하지만 그 밑에 새겨진 글의 내용을 알고는 많은 감명을 받는다고 한다. 그 동상의 모습은 앞머리에는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데다가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그리고 그 동상 아래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떠나갈 때 내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기회는 정말 찰나적인 순간에 도둑처럼 야속하게, 은밀하게, 예고도 없이 우리의 인생에 살짝 다녀간다고 한다. 기회를 잘 포착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가장 커다란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실은 살아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기회를 만난다. 성공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일생에 세 번은 온다고 들었다.

그러나 귀중한 만큼 기회 포착이 쉽지를 않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그렇지만 누구나의 삶 속에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얻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많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놓쳐서는 안되겠다. 생각해 보자. 우리네 삶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거다. 그 때를 놓치면 리플레이라는 건 우리 인생엔 없다. 다만 꼭 한 번 뿐인 거다.

어쩌면 바로 오늘이 그 때인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날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회를 발견하여 그 흔적을 바짝 거머쥐어야 하는 날인지도 모른다. 후회 없는 오늘 하루가 되기 위해서는 긴장하면서, 나태한 습성과 버릇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타성에 젖은 일상에서 힘차게 탈출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와 좌절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바로 가을이 가는 이유다.

우리로부터 솟아난 밝은 미소의 힘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둡고 힘겨운 구석을 밝혀야 한다.미소는 돈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이루어낸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하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지는 않는다. 미소는 번개처럼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지속되기도 한다. 미소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고 미소의 혜택을 즐기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다. 미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부여되는 신의 선물이다. 우리의 삶에 소중한 지표가 되어질 기회의 열쇠다.

미소는 가정에서 행복을 꽃피우게 하고, 직장에서 호의를 베풀게 하며, 친구 사이에는 우정의 징표가 된다. 지친 사람에게는 안식이고 낙담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이다. 세상 어려움을 풀어주는 자연의 묘약이다. 하지만 미소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으며 훔칠 수도 없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환한 미소 속에 담겨있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마음과 더불어 가는 마음의 발로다.

다른 누구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 타인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상처를 주는 언행으로 다치게 하기 보다는, 다정한 조언의 말로 다독이면서 힘을 복돋아주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를 헐뜯고 경멸하기 보다는, 그의 그릇된 자리에 빛을 주고 격려해주는 마음이 더 소중하며, 의심하기 보다는, 믿어주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세상의 모든 투쟁과 반목은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산다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늘도 변화가 있고 계절도 변화가 있듯이 우리 삶도 희망의 변화가 있기에 변화의 아름다움을 품어내는 우리들의 마음들이라면, 그런 마음들이 어울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라면 좋겠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이 계절의 한 페이지를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이야기로 만들어간다면 더없이 좋겠다. 바로 가을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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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밤에는
가을이 익는 소리 들린다

잠못드는 창녘으로
볼썽 사나운 상념의 여울목을 휘저으며 난,
커피잔 속에 녹아 내리는
이 가을과 이야기 한다

기관지염에 시달려 캑캑대는
어린 자식새끼의 베개맡에서
줄담배로 깊어가는
시계 바늘 부여잡고 그래도,
가을은 낭만적이었다고

마즈막 남겨진 내 영혼의 소리에서
짐짓 가을을 되새김한다

어차피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
그렇게 산다고 믿으며 사는 것,

설운 상흔의 세월을
아리도록 그리면서도
이 밤만은 잠들리라-
흐드러진 가을의 씨알을
뒤척뒤척 모아 쥐고
한 껏 착한 평화를 들으면서 또
하얗게 밝히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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