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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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뎀나무 쉼터 *



시작노트

" 로뎀나무 쉼터 " 詩作 note

이제 정말 세모가 목전이다. 제대로 갈무리 되었든 아니든, 무조건 마무리지어야 할 때다. 어수선하면 어수선한대로, 깔끔하면 깔끔한대로, 묵은 것은 보내버리고 새 주머니를 준비해야 한다. 조심스레 또 하나의 반죽을 빚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해야 한다. 제대로 준비 못하고 엉절거렸던 올 해의 실수를 거울 삼아서, 새 주머니에는 제법 먹음직스러운 어떤 것을 소담스레 담아가야 한다.

이것이 대 명제다. 이것이 엄숙한 역사의 명령이다. 이것이 영원히 이어질 우리 삶의 소중한 의무다. 면면이 이어질 우리의 의미다. 이것이 바로 새 해를 맞는 이 시점에 우리가 다져야 할 각오다. 로뎀나무 쉼터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다. 로뎀나무 쉼터에서 진실한 쉼을 얻고 싶다면,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절대 잊지 않을 추억과 소망의 교차점에서, 거대한 삶의 태동을 느끼려 한다. 기다리던 이 날이 마침내 우리에게 도래하였다. 목하 세모다.

올 해도 새 해 벽두에 세웠던 계획은 있었다. 스스로에게 했던 굳은 약속이 있었다. 나름 다짐과 각오로 가슴 설레던 연초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서는 얼마나 허전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지, 하나 하나 돌이켜볼수록 아쉽고 낯 뜨거워 계면쩍다. 사실 약속이란 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 자신과의 약속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약속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것들이 모든 인간 관계의 근원이며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모든 창조의 기원이며 원류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일화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보채는 것이었다. 그러자 증자의 아내가 말했다. “얘야,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어라. 엄마가 시장에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해주마.” 그 말에 아이는 떼쓰기를 멈추었고 얌전히 증자 곁에서 혼자 놀았다. 얼마 후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고 있었고, 어린 아들은 신이 나서 옆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남편 증자에게 물었다. “아니, 여보. 아까 내가 돼지를 잡겠다고 한 건 그냥 애를 달래려고 한 건데... 정말 돼지를 잡으시면 어찌합니까?” 증자가 정색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에게 실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되오. 아이들은 무엇이든 부모의 흉내를 내고 배우게 마련이오. 그런데, 당신은 어머니로서 아들을 속이려 했소. 어머니가 아이를 속이면 그 아이는 다시는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훗날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겠소?”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중요성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이 몸에 배도록 부모가 본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와의 약속은 믿음이고 신뢰이고 사랑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 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신용과 체면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그만큼 서로의 믿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이 말은 ‘앤드루 카네기’의 말이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약속들은 그 상대가 누구이든지 반드시 그 결과가 보람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약속의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 약속의 중요성이 인정되어지는 삶이, 바로 제대로 된 세상이며 삶의 모습이다. 우리의 이 약속들은 스스로의 소양과 인격도야의 척도가 되어진다. 그렇기에 약속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모든 삶의 가장 첫 번 째에 위치하는 덕목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가장 먼저 ‘약속’을 새 해의 화두로 삼는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이 ‘용서’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옛말이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은 참 가깝기도 하지만 멀기도 한 사이인 듯 하다. 우리는 살면서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분명한 건, 이제는 너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과거 우리의 인생 속엔 행복하고 감사한 기억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원수를 물에 새겨서 바로 잊어버리는 것처럼 진정 마음 편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친한 두 친구가 사막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친구는 여행 중에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뺨을 맞은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래 위에 글을 적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뺨을 맞았던 친구가 오아시스 근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뺨을 때렸던 친구가 달려가 그를 구해주었다. 늪에서 빠져나온 친구는 이번에는 돌에 글을 적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 친구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 적었니?”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그래야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했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 적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서로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칼로 자르듯이 명확한 구분이란 것은 실상 무의미하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제의 원수가 오늘에는 친구가 되어지기도 하고, 오늘의 벗이 내일은 미움의 대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삶이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서 반응하기 보다는 언제나 신중하고 고요한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고, 나쁜 일은 빨리 잊는 것이 삶의 지혜다. 그렇게 맺어지는 인간 관계야 말로 바람직한 삶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이제 새 해의 화두 중에 필자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제시하련다. 그건 역시 언제나처럼 ‘사랑’이다. 필자가 시시때때로 강조하며 권장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감정 중에 가장 아름답고 고운 감정인 사랑이야 말로, 새 해를 맞이하는 이 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곱씹어야 할 결정적인 단어다. 정말이지 새 해에는 온 누리에 사랑의 꽃이 활짝 피어났으면 참 좋겠다. 사랑의 향기가 넘실대고 사랑의 온기가 가득히 퍼어져가는, 그래서 진정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진다면 정말 정말 좋겠다.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은 ‘청민’의 신작 에세이가 최근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책은 문장 곳곳에 저자의 감성과 섬세한 시선이 배어 있다. 출근길에 스친 풍경을 묘사한 ‘출근길에 스치는 조각’은 무심결에 스칠 만한 작은 일상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골목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아침 햇살이 아주 예쁘게 들어왔고, 부부는 매일 아침 새로운 햇살을 받으며 서로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며 한편으론 숭고하기까지 해, 나는 늘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산책하는 부부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유치한 농담, 김광석, 엄마가 물려주신 꽃무늬 스커트, 조조영화, 오래된 골목, 여름과 가을 사이, 덕수궁, 프리지아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픈, 아주 보통의 청춘이면서, 맑은 가을하늘 같은 감성으로 희망과 사랑을 쓰고 싶은 B컷 시선의 저자는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엿본다.

누구나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외롭게 할 때, 누군가 너무 미워질 때,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면 사랑을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분다. 또한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우리는 상처받고 힘들어도 불어오는 사랑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혹시 사랑에 아파본 적 있는가? 사랑하는 것이 외로운 우리들에게 저자는 조용한 미소로 팔 벌린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다.” 라고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생각나는 밤에 이 책은 많은 생각과 감성을 우리의 가슴 속에 선물한다. ‘토끼와 용왕님’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을 소개한다. - 이모는 누구에게나 반가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옛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곤 했다. 이모는 부모의 사랑을 이길 자식은 없다며 할머니의 희생을 치켜세웠고, 그러면 할머니는 “됐다, 그만해라.”며 민망해하셨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친척들은 이모의 너스레에 깔깔 웃었다. 이모는 언제나, 딸이 없어서 그게 아쉽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모에겐 아들만 두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첫째 아들, 나에게는 사촌오빠인 ‘박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고집이 셌다. “요한아, 옆집 아처럼 엄마한테 사근사근하면 안 되겠나?” 이모는 종종 오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오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마는 가 엄마만큼 우리 얘기 잘 들어주나?”며 반박했다.

오빠는 착하기는 한데 그저 자기 엄마에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그런 오빠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스물, 고작 스무 살 때였다. 이모는 간암을 앓았다. 간암은 빠르게 전이되었고 힘겨운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 다섯 번째 항암 치료를 받던 날, 이모는 주치의와 의논 후 간이식을 결정했다. 주치의가 제안한 방법은 이모의 간을 완전히 떼어내고 기증자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기증자는 젊으면 젊을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좋다고 했다.

이모네 집에서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요한 오빠밖에 없었다. 오빠에게 간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모부의 모습은 꼭 ‘별주부전’의 거북이 같았다. 용왕님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토끼가 아들이라니... 토끼와 거북이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만났고, 거북이는 어렵게 토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 그건 당연한 거다.” 자신의 간 절반 이상을 떼어줘야 하는 대수술을 앞에 두고 당연하다니. 토끼에겐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당황한 거북이가 더듬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토끼는 대답했다. “내가 엄마 아들이잖아. 그건 당연한 거다.” 이식을 결정하고 동의서를 쓰는 토끼에게, 의사 선생님은 전신마취를 할 거라는 이야기와, 혹시 모를 상황들을 설명해 주었다. 잔뜩 겁을 먹은 토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신마취와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신마취의 부작용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토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눈으로 직접 부작용 영상을 확인한 토끼의 입장은 달랐다. 덮쳐오는 두려움이 토끼의 밤을 더 깜깜하게 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밤의 온도를 이제는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겠구나.’

그날 밤 토끼의 두려움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토끼는 아무도 모르게 최고의 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싫어 하던 운동을 하고, 튀기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토끼에게 요구한 젊고 싱싱한 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스물. 토끼는 한 번뿐인 청춘의 시간을 ‘용왕님께 바칠 싱싱한 간’을 만드는 데 들였다.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용왕님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토끼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원래 토끼는 간을 60%만 떼어 주기로 했었지만, 간이 예상보다 작아 70%나 떼어줘야 했고, 예정보다 많은 양을 떼어낸 게 토끼에게 무리를 주었다. 여덟 시간이 넘게 토끼는 침대에 누워 쌕쌕거리며 숨만 쉬었다. 토끼가 눈을 뜨지 못하는 내내 용왕님과 거북이는 수술 전보다 더 애를 태웠다.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토끼가 눈을 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용왕님도 토끼도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큰 일을 겪고 나서도 오빠는 여전하다. 예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사근사근한 아들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농담의 수위였다. 간을 내주면 사주기로 했던 최신형 노트북을 왜 안 사주냐느니, 내 간 다시 가져갈지도 모르니 문 잘 걸어 놓고 자라느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뚝뚝한 말 속에 애정이 흐른다. 이모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엄마 간은 엄마 거 아니고 내 것이니 잘 돌보라고 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는 이제 내 딸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잘해라.” 수술 후 오빠는 아직도 수영장과 목욕탕을 못 간다. 몸에 적나라하게 새겨진 상처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모는 말했다. 그때는 오빠 마음을 다 몰랐다고, 삶의 갈림길에 서 보니 오빠 마음이 보인다 했다. 고작 스물의 아들내미가 어떤 결정을 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예전처럼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해도 아들 몸엔 절대 칼을 대지 못할 거라고.

수술 전날, 오빠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던 이모는 지금이라도 두려우면 꼭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오빠는 이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놓았다. “엄마, 내 사실 지금 떨린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간 떼 주는 건 당연한 거다. 걱정되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엄마 닮은 내 동생 ‘은강이’가 나중에 안 좋아지면 간 떼 줄 사람 없는데, 나는 지금 그게 걱정이다.” -

이 세상에 당연한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내가 당신에게서 와서, 그저 당신이 나를 낳은 엄마라서. 그 이유만으로 사랑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수없이 많은 사랑 중에 생각나는 이름은 무엇일까? 예컨대 사랑의 무한함과 무궁무진함은 영원이라는 이름과 상통한다. 감히 사람의 상상력으로 그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조차 죄악이고 어불성설이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하다. 그러면서도 아주 작고 소소한 일상과 소외된 구석에서부터 시작하며, 솔솔 피어올라 급기야는 온 우주를 덮는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바야흐로 ‘붉은 닭의 해’가 밝아오고 있다. 해마다 이 맘 때면 교수들이 올 한 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를 규정지을 수 있는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는데, 2017년 사자성어는 아직 발표를 안하고 있다. 선정하기가 괴로운가 보다. 아니면 2016년의 사자성어였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너무나도 예리하게 맞춘 데 대한 망설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무능하고 어리석은 군주를 뜻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가리키는 ‘혼용(昏庸)’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의미하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를 합쳐 만든 사자성어였던 2016년의 설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니 의례껏 별다른 주저함 없이 발표하던 올 해의 사자성어를 뒤척일 수밖에 없을 게다.

올 한 해, 무능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로 인해 엉겁결에 나라는 결딴나고 말았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렇지만 저력의 대한민국, 불굴의 우리 민족이 아닌가? 새 해에는 세계가 놀란 ‘메이드인 코리아, 민주주의’가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 광장에 만발한 촛불의 힘으로 참 민주주의가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일부 정치 몰이배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눈치나 보면서 시류를 틈타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아닌 나라가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무능과 부정에 대항하여 치켜든 촛불이, 고장난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수선해야 한다. 민주광장에 펼쳐진 촛불의 용기와 열정이 정치개혁, 검찰개혁, 재벌개혁의 결실을 거두어, 훗날 역사에 평화적인 ‘2016 촛불혁명’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2017년 새 해의 사자성어는, 단연코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촛불혁명’이다. 평화와 사랑이 실현되는 ‘촛불혁명’이다. 그렇게 세상을 바꿀 촛불 하나 들고 로뎀나무 쉼터를 향해 나아간다. 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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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로뎀나무 아래
홀로이 누워있었네

하늘문 우지끈 열리더니
커다란 평화 얼음되어 쏟아질 제
곤고한 심사 위로받고 싶어서
따슨 손길 그리며 문밖 바라예면

마즈막으로 남겨진 갈멜산의 싸움
그 싸움만 견디면 되는 건데, 그런 건데
예서 무릎 꺾인 믿음, 불면

깊은 새벽에만 투정부리는 쉼터
황홀히 맺힌 얼음 로뎀나무에 열리네,
주렁주렁, 다시 주렁주렁, 그리고 또

모든 건 하얗게 얼어붙고 말았네
순백의 세상은 분명 아름다워,
하지만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

변함이 없고, 변화가 없어,
그래서 변하질 않네
그냥 이대로 고정되어버렸네

그렇거나 말거나,
영원토록 세상은 이 모습 이대로 머물 거야
순백의 세상은, 로뎀나무 그늘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어떤 존재도
통 허락질 않는다네

영 허락할 수가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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